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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반기 불교미술은 억불숭유 라는 시대적 상황에 따른 사상적 한계를 지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형상과 형식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방식의 전개로 나타난다.
-상세정보
/아미타불 금동상/
신장 10cm, 25.7cm
명나라, 15세기초
히말라야 예술자원품 제13939호
-소개
이 아미타불의 곱게 주조된 조각상은 쌍연꽃받침 위에 앉아 두 손을 잡고 다야무드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섬세한 주조와 금박이 특징적인데 이는 자연스럽게 본뜬 옷주름과 고요한 표정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양식적으로는 티베트 불교가 궁중 종교가 되고 새로운 조각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한 원나라 시대에 확립된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 둥근 몸, 그리고 계층화된 왕좌를 가진 인물들은 항저우 옌선원의 수도원을 위해 만들어진 14세기 초 목판에 묘사되어 있으며 15세기 초에 활동한 장인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사용한 것은 당시 티베트에서 선호되었던 양식을 반영하는 이 이미지들일 수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폈으며 그 결과 불교가 쇠퇴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조선 전반기 불교미술은 불교를 숭상했던 고려시기보다 오히려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왕실의 지원 아래 명나라에서 발전한 티베트 불교미술이 들어온 까닭인 것으로 티베트불교는 인도 후기 밀교의 영향으로 발전하였다. 12세기 서인도 팔라왕조의 불교가 힌두교세력에 밀려 네팔과 티베트로 전해지면서 독특한 특징을 형성하였다.
이후 원나라가 티베트불교를 신봉하면서 중국 내륙에서 유행하게 되었으며 티베트계 명양식 조각의 특징은 높은 육계와 정상에 동그란 정상계주, 편단우견의 착의법, 항마촉지인, 석가불의 유행, 앙․복련 연화 대좌 등이다.
얼굴표정이 다소 날카롭고 신체비례는 사람의 굴곡있는 신체와 유사하여 가슴에 유두가 표현되지만 긴 허리에 비례해 하체는 짧다.
보살상은 보관의 관대가 아주 과장되게 옆으로 날리는 형태로 표현되거나, 가슴을 뒤덮는 화려한 영락과 비단 띠로 어깨를 감아 맨살을 가리는 옷차림을 사용하여 점차 중국 전통불교와 티베트불교가 융합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조선 15세기 조각은 이러한 특징을 받아들여 발전한 것이다.